개와 닮은 소년을 집에 들이기로 한 이후 토니 스타크는 자신이 간과하고 있던 몇 가지 현실적인 문제를 깨달았다. 첫째로 그가 사는 저택은 바쁜 대기업 대표의 거주지답게 출입을 허가받은 고용인이 다수 존재했다는 것이며, 둘째로 그들 눈에 피터 파커는 전혀 개로 보일 리 없다는 부분이었다. 그는 어느 직원에게도, 하물며 해피 호건에게조차 최근 제 주변에 일어난 변화를 누설할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업무 중 실없이 내뱉은 사담만으로도 온갖 루머가 생성되는 슈퍼스타 입장으로서, 그건 소년을 상대로 교통사고를 냈다는 사실보다 훨씬 더 지저분하고 끔찍한 소문들을 창조할 것이 틀림없었으므로.

“개는 어쩌고요?”

그러한 까닭으로 모든 직원에게 당분간 자택 출입을 금하자 대뜸 해피 호건이 꺼낸 말이었다. 자주 집을 비우는 주인 대신 개를 돌볼 사람이 한 명은 필요하지 않겠냐는 뜻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물론 그가 데려온 것이 정말 ‘개’라는 가정 하에 말이다.

“내가 알아서 돌볼 거야.”

다만 사실을 말할 수 없는 남자가 꺼낸 답변은 어린애 변명보다도 못한 수준이었다. 그 즉시 스마트폰 수화부 너머에서 들으라는 듯 해피 호건의 커다란 코웃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것 참 볼만 하겠네요. 개 사료랑 프로틴 시리얼 구분은 할 줄 아세요?” 누구보다 남자를 잘 아는 경호원이 물었다.

“알지. 맛을 보면 되잖아.”

웃음기 하나 없는 목소리로 토니가 대답했다. 특유의 농담과 진담 구분이 어려운 말투였다. 잠깐이나마 조용해진 대화 상대 대신, 그는 저 멀리 방금 막 걸친 옷자락을 어색한 손동작으로 만지작거리는 피터 파커에게 신경을 곤두세웠다. 아이가 입은 옷은 역시나 사이즈가 맞지 않아서 반팔임에도 소매가 팔꿈치 밑까지 내려올 정도였다.

“그 여성분 때문이에요?”

문득 해피 호건이 물었다. 평소 먹지도 않는 간식까지 잔뜩 구입해 돌아간 상사를 의심 중인 그로선, 집 출입을 엄금할 이유는 오로지 그것뿐인 모양이었다. 토니는 슬슬 통화가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학생도 아니면서 질문 좀 그만하면 안 돼?”

“맙소사, 사랑에 빠졌다는 소문이 진짜였단 말이에요? 그 나이에 동거라도 하시려고요?”

허나 상대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다는 양, 부하 직원은 버럭 소리 지르듯 재차 따져 물을 뿐이었다. 최근 파티 참석이 뜸하다는 이유만으로 세기의 사랑꾼이 된 현실을 되새기면서, 토니 스타크는 다시 한 번 피터 파커의 존재를 숨겨야 함이 마땅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소문이란 몹쓸게도 가장 극적이며 허무맹랑한 형태로 퍼져나가곤 했으니.

“심지어 성적도 나쁜 학생이었군. 전화 끊고 가서 *OCW나 듣지 그래.” *MIT 등지에서 제공하는 무료 청강 프로그램

그리곤 대답도 듣지 않은 채 통화를 종료한 그는 언제 또 울릴지 모르는 애물단지를 저만치 휙 던져버렸다. 어느덧 피터 파커는 옷으로부터 눈을 돌려 남자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눈치를 살피는 게 역력한 기색이었다. 드디어 옷을 입어준 보람도 없이 여태껏 구석 자리만을 고수하는 아이는 한결 같은 경계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별달리 허기를 느끼진 않았으나 토니는 다소 늦은 식사를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먹이를 제공하는 것만큼 야생동물을 길들이는 데에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는 생각과 더불어, 누가 봐도 허약한 아이의 영양 상태가 못내 신경 쓰였기 때문이었다. 하루 밤새 질리도록 본 상대의 알몸은 어디 아픈 사람 마냥 바싹 야위어 살집 없는 뼈마디를 자랑했다. 떠돌이 개들은 으레 차에 치이거나 부족한 영양분으로 최후를 맞이했으니, 그간 수집한 모든 근거를 토대로 그는 아이가 고작 하루 이틀 굶주린 것이 아님을 확신했다.

그러나 그리 기백 넘치는 마음으로 부엌 조리대 앞에 선 남자는 자신이 간과한 문제에 또다시 봉착하고 만 것이다. 그는 현재 쇄골 부상으로 인하여 오른손을 전혀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멀쩡한 양손으로도 제대로 된 끼니 한번 준비해본 적 없는 이가 한 손으로 만들 수 있는 요리라곤 날것의 재료를 쌓거나 늘어놓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토니는 굽지도 않은 식빵 위에 피넛 버터를 치덕치덕 덧바르면서 고용인 중 요리사 한 명은 남겨두는 편이 좋았으려나 뒤늦은 후회를 떠올렸다.

마침내 완성된 음식을 그는 부엌으로부터 들고 나와 식탁이 아닌 거실 바닥에 내려놓았다. 줄곧 구석에 숨어 눈치를 보는 아이에게 식탁으로 올라와 앉으라는 말이 어떻게 들릴지 도통 예상되지 않았던 까닭이다. 어제처럼 더는 거부당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그는 아이의 입에서 ‘싫다’는 말이 나올 만한 선택지는 주지 않으려 애쓰는 중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바로 옆에 앉아 제 몫을 집어 들 때까지 피터 파커는 고정된 자세로 그저 접시 위를 멀뚱멀뚱 쳐다만 볼 따름이었다.

“설마 피넛 버터 젤리를 원하는 건 아니겠지? 설탕 덩어리로 완벽한 탄수화물 균형을 망쳐버리는 짓 말이야.”

꽉 닫힌 채 굳어버린 잼 뚜껑을 한 손으로 여는 일에 실패한 남자가 말했다. 피터 파커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대답을 대신했다. 결국 그는 변명 같은 한마디를 덧붙이고 말았다. “안 남기고 다 먹으면 상으로 간식 줄게.”

토니 스타크는 먼저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고는, 매일 이런 것만 먹다간 성격이 아주 나빠지거나 아니면 아예 득도를 하거나 둘 중 하나일 거라며 차디찬 평가를 내렸다. 굽지 않아 딱딱한 빵과 휘젓는 단계를 생략해 뻑뻑한 피넛 버터는 들인 시간만큼이나 성의 없는 맛을 냈다. 한 끼 때울 요기는 되어줄지언정 기념비적인 첫 식사로는 남지 못할 터였다. 토니가 먹던 것을 다시 내려놓을 때 즈음 피터 파커가 겨우 접시에 손을 올렸다. 그는 아이가 머뭇거리며 입 안에 샌드위치를 넣을 때까지 부러 그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정작 만든 이는 반도 못 먹고 내버린 음식을 피터 파커는 몹시도 공들여 먹어주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볼을 보아하니 의외로 입에 잘 맞는 모양이었다. 맛있냐고 물어볼 필요조차 없었기에 남자는 한동안 아이가 먹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로선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는 감각을 난생처음 느낀 것이었다.

“누가 보면 피넛 버터 처음 먹어본 줄 알겠네.”

손에 묻은 잔여물까지 싹싹 핥아 없애는 행동이 말 그대로 강아지를 연상시켜 토니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빵 부스러기 하나 남기지 않고 먹어 치운 것이 기특하여 곱슬머리를 툭툭 쓰다듬었더니, 아이가 영 이상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유 모를 침묵이 이어졌다. 잠시 뒤, 경악에 찬 표정으로 토니가 물었다. “…정말 처음 먹어보는 거야?”

기다렸다는 듯 피터 파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뭐 잘못됐냐는 양 태연자약한 얼굴이었다. 덕분에 토니는 아이를 집에 들인 직후 목욕보다 먼저 해야 했던 일을 새삼 되새길 수 있었다. 어렴풋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그는 피터 파커의 과거가 제 예상보다 훨씬 더 평범하지 않음을 직시했다.

“그럼 그 전엔 뭘 먹고 살았는데?”

토니가 다시 물었다. 진짜 개 사료라도 먹고 산 거냐고 묻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질문이었다. 피터 파커가 일순 미간을 찌푸렸다.

“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렇게 맛있지는 않았어요.”

곧이어 튀어나온 대답은 표정에 걸맞도록 확연히 부정적인 감정을 내포하고 있었다. 토니가 덩달아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그는 궁금증의 방향이 점차 다른 곳으로 향함을 느꼈다. 그건 어떻게 따져보아도 부자연스럽기 짝이 없는 성장 배경이었다. 피터 파커의 정체 이전에, 그에게 돈의 개념조차 알려주지 않고 한낱 피넛 버터에 감동받을 만큼 엉망인 생활을 제공한 작자가 궁금해진 것이었다. 기실 의문보다는 혐오에 가까운 감각이었다.

“길바닥에서 자던 이유를 알겠군.”

토니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정적과 함께 피터 파커의 안색에도 서서히 변화가 찾아왔다. 기분에 따라 저절로 흔들리는 꼬리 대신 그는 안면에 모든 감정 표현을 다 드러낼 모양이었다. 즉, 거짓말엔 영 재능이 없는 타입이었다.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불현듯 피터 파커가 속삭였다. 엉뚱한 대답이었지만 만난 이래 처음으로 자기주장이라 말함직한 문장이었다. 그럼에도 목소리는 두려움으로 가득 차 떨림이 전해졌다. 정체를 파악하기는커녕 의문만 한층 더 깊어진 질답이었으나 토니는 그 이상의 질문을 훗날로 미루었다. 데려온 지 하루 만에 모든 걸 알 필요는 없었으므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겁을 먹는 기억이라면 더더욱 신중해야 함을 알기에.

네가 원한다면 계속 여기 있어도 돼. 남자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 “간식 다 먹으면 이 닦는 거 잊지 마. 맹세컨대 치과는 네가 살던 곳 이상으로 끔찍할 테니까.”




이후부터는 바쁜 날이 이어졌다. 업무를 처리해야 할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그동안 연구실에 틀어박혀 다른 문제에 매달려 있었으니 실로 당연한 결과였다. 평소 집보다 회사 건물에서 숙식하는 날이 더 잦은 입장으로서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으나, 낯선 저택에 홀로 남겨진 ‘개’는 경우가 다를 것이 분명했다. 부엌에 있는 건 뭐든 꺼내 먹어도 상관없다며 통보한 걸로 만족하기에 아이는 냉장고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물건인지도 모르는 수준이었다. 토니 스타크는 피터 파커에게 개나 홈리스가 아닌 새 신분을 부여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우선임을 깨달았다. 어린 소년이 스타크 가 소유의 저택에 머무른다 해도 직원 모두가 납득할 만한 아주 그럴 듯한 신분 말이다.

어쨌든 ‘개’를 비밀에 부친 현재로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되도록 유통기한이 길고 간편한 음식을 죄 늘어놓고는 아이가 알아서 찾아 먹기를 바라는 것뿐이었다. 도무지 집중할 수 없던 회의를 가까스로 견뎌낸 남자는 집무실로 돌아와 그 즉시 홀로그램 모니터부터 띄웠다. 토니 스타크의 자택은 스타크 사 기술력의 본산지나 다름없는 곳이므로 사내 어느 장소보다 철통 보안을 유지했다. 즉, 기밀 보호를 위한 CCTV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키보드로 관리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자 모니터 위에 익숙한 집안 내부가 여러 화면으로 나뉘어 펼쳐졌다. 토니 스타크는 어딘가 있을 아이의 행방을 눈으로 좇으며, 지금 자신이 보안 카메라를 펫 캠처럼 사용 중이라는 사실을 애써 상기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피터 파커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는 늘 머물고 있는 거실 구석에서 좀처럼 움직일 줄 몰랐다. 가끔 화장실을 가거나(토니 스타크는 그가 화장실 사용법을 안다는 것에 감격하고 말았다. 마치 입양한 강아지의 배변훈련에 기뻐하는 견주마냥.) 멍하니 창밖을 내다볼 때를 제외하면 음식물조차 거의 섭취하지 않았다. 간혹 돈을 늘어놓고 구경하는 행동은 배경을 아는 이에게나 기특한 광경일 뿐, 썩 보기 좋은 모습이라 말하기는 어려웠다. 어찌나 그 일만을 반복했는지 빳빳했던 새 지폐는 어느덧 귀퉁이가 닳아 너덜너덜한 헌 돈으로 돌변해 있었다.

다시 말해 피터 파커는, 일 중독인 천재의 눈에 조금도 시간을 소비할 줄 모르는 사람처럼 보였다.

손가락으로 책상 위를 톡톡 두들기며 토니 스타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현시점에서 최대한도로 끌어 쓸 수 있는 휴일이 어느 정도일지를 가늠했다. 다친 쇄골을 핑계 삼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 빌드업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걸 알지만 큰 사건 없이 흘러가는 회차는 언제 써도 고역이네요... ] 

보러 와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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